김증한(金曾漢)
법률공부는 어떠한 방법으로 해야 하느냐. 세상에 법률책도 많지만 법률공부의 방법에 언급하여 이것을 친절하게 지도하여 주는 책을 하나도 볼 수 없는 것은 실로 이상할 정도이다.
법과대학도 많고, 법과생도 많고, 법학사도 많고 그리고 고등고시를 치르는 사람도 많지만 해마다 고등고시의 합격률이 대단히 나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시의 채점이 엄격하여서 웬만큼 써도 좋은 점수를 못 받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고시위원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채점을 후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주어 한 사람이라도 더 합격시킬 수 있을까에 몹시 부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 의견으로는 고시합격률이 나쁜 원인은 대다수의 수험생은 법률공부의 방법이 나쁘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을 여러 번 쳐도 실패하는 사람은 그 실패의 원인이 틀림없이 공부방법의 졸렬에 있다.
법률공부에 관하여 가장 그릇된 생각은 법률공부는 암기나 기억을 위주로 하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다. 법과생들의 공부태도를 보면 아직도 책이나 조문을 외우려고 대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게 공부하여서 고등고시에 합격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다. 가령 민법만 하더라도 민법 천여 조를 덮어놓고 외운다는 것은 암기의 기재(奇才)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법률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 법률공부의 요체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법률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즉 법률적 사고방법(juristische Denkweise)을 체득함에 있다. 법률적 사고방법이란 것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말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고 법률공부를 하는 동안에 그야말로 몸으로 또는 감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전산학, 컴퓨터과학, 컴퓨터공학, 소프트웨어공학, 정보통신공학, IT + X학과처럼 Computational Thinking, Design Thinking을 강조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법률가의 임무라는 것은 따지고 본다면 그것은 결국 개인과 개인 사이 또는 개인과 국가 사이의 법률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따라서 법률공부의 목표는 이러한 법률문제를 해결할 실력을 양성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그 법률문제라는 것은 복잡하게 엉킨 권리의무를 잘 가려서 결국 어느 편이 얼마만큼 +(플러스)가 되고 어느 편이 어느 만큼 -(마이너스)가 되느냐를 계산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법은 저울로 상징되고 정의의 신은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그러나 권리의무의 계산은 산출의 가감산처럼 단순치는 않다. 어떠한 경우에 +(플러스)가 되고 어떠한 경우에 -(마이너스)가 되느냐 하는 계산의 기준을 체득하는 것이 즉 법률적 사고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기준은 한 번 써먹고 말 것이 아니라 그와 동종의 모든 경우에 공통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따라서 그것을 체득하려면 사회문제의 이모저모를 잘 알아야 하고 그 기준이 타당하냐 어떠냐를 많은 문제를 가지고 “테스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법률을 가르치는 데 “케이스 메서드”(Case method)라고 부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 방법은 지금부터 80여 년 전에 하버드대학의 랭델(Langdell) 교수가 시작한 방법인데 수년 동안에 전미국에 보급되어 현재는 법학교육에 있어서 지배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경제학 기타의 과목의 교수에도 활용되고 있다. 다음에 그 “케이스 메서드”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자.
학생 각자는 “케이스 북”(Case book)이라고 부르는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케이스 북이란 무수히 많은 재판 판례 중에서 법률공부를 하는 데 본보기로 적당한 것을 추려 모아 적당히 분류 배열하여 놓은 책이다. “케이스 북”은 계약법, 불법행위법, 물권법, 헌법 등 과목별로 되어 있고 한 권이 7, 8백 페이지로부터 천 4, 5백 페이지에 달하며, 한 권에 수록된 판례 수는 7, 8백개 내지는 그 이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법률교과서에 비하면 훨씬 방대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케이스 북”을 가지고 예습을 하여 간다. 그 예습이라는 것은 각 판례를 잘 읽고 사실의 요지, 그 사건에서 문제가 되어 있는 법률문제(쟁점), 그 문제에 대한 판결요지 및 판결이유 등 일언으로 말하자면 그 판례의 요약을 카드에다 기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케이스 브리핑”(Case briefing)이라고 부른다. 다음 시간에 어디서 어디까지 할 것이며 특히 어느 판례에 중점을 두고 하겠고 교과서 이외에 어떠한 서적 또는 논문을 참고로 읽어오라는 것은 2, 3시간 분씩 미리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하여 둔다(이것을 “어사인먼트”(assignment)라고 부른다). 그 “어사인먼트”에 따라 한 시간(50분―미국에서는 모두 50분 강의이다) 분의 예습, 즉 “케이스 브리핑” 하려면 두 시간이나 세 시간 가지고는 부족한 수가 많다.
학생들은 이와 같이 충분히 예습을 하여 가지고 교실에 나오게 된다. 교수는 “A군, 갑 대 을 사건의 내용을 간단히 말해 보시오.” “그러면 B군,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은 어떤 점인가.” “그러면 C군, 이 사건과 요전에 나왔던 병 대 정 사건과를 비교하면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나.” “다음에 그러면 D양, 그래 원고는 무어라고 주장하였나.” “E군, 피고는 이에 대하여 무어라고 답변하였나.” “F군, 그래 재판소의 판결은?” “G군, 군은 이 판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식으로 묻고 학생들이 이에 대하여 자기가 예습한 바 또는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이와 같이 강의시간은 교수와 학생간의 활발한 질문 응답으로 진행된다. 물론 학생에게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여 50분 동안에 판례를 수개 내지 수십개 취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구체적 판례의 연구검토를 통하여 귀납적으로 “아, 불법행위란 이런 것이구나.” “이러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저러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으니 양자의 경계선은 대체로 여기쯤에 그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은 이해시키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방법은 구라파 각국이나 영국에 있어서와 같이 강의식(Lecture method)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교수가 혼자서 이야기하고 학생은 피동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는 다시 필기식 즉 교수가 저술하듯이 “노트”를 만들어와 가지고 그것을 천천히 읽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쓰게 한 후 간단한 설명을 보태는 방법, 소위 “프리 렉쳐”(Free lecture)라고 교수가 마치 강연하듯이 1시간 44분 동안 내리 혼자서 이야기하며 학생은 최대한의 정신집중을 하고 속기하다시피 그것을 받아쓰는 방법,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를 가지고 오게 하여 중요한 점 교과서로는 부족한 점 등에 치중하여 설명을 하여 주는 방법이 있다. 추세는 “필기식으로부터 프리 렉쳐로, 프리 렉쳐로부터 다시 교과서식으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강의식에 있어서는 가령 불법행위의 이야기이면 “불법행위라 함은……”이라고 정의를 먼저 내려놓고 “이를 분설하면 다음과 같다. 1․2․3․4, A B C D, 가 나 다 라”라는 식으로 차차로 세분하여 내려간다. 즉 일반적 원칙으로부터 차차로 세분하여 구체적 사건에까지 이르는 방법, 즉 연역법이다.
이 연역법에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되 이 방법으로 법률을 배운 우리나라 법학도는 원칙은 제대로 외우고 있으면서 예를 하나 들어 보라면 엉뚱한 오히려 자기가 금방 말한 바와는 상반되는 예를 들고 어떤 문제에 당면하여서는 어쩔지를 몰라서 멍하고 있는 예가 많다. 이것은 확실히 연역법 교수법의 폐단이다. 또 학생들이 피동적으로 앉아 듣기만 하니 자연히 학생들이 예습을 하지 않고 시간에 나와서야 처음 듣는 일이 많다. 그러나 법률공부라는 것이 시간에 앉아서 듣기만 하면 금방 그 자리에서 이해할 수 있을 만치 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장시간 얌전하게 앉아만 있자니 자연히 졸음이 와서 졸기도 일쑤고, 또 오늘 오후에 모 양과 만날 양속을 상기하며 그때의 즐거움을 상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4년 동안 대학을 다녀 법학사가 되어 보았자(그래 가지고는 법학사가 되지 못해야 옳은 것이지만 요새는 그래 가지고도 법학사가 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결국 “엉터리 법학사” 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법학사의 칭호를 바라 보고서가 아니라 진정코 법률적 사고방식을 체득하여 법률문제 해결의 실력을 양성할 수 있는 공부방법은 어떤 것인가.
먼저 학교에 다니는 학생 제군에게 가장 중요한 점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반드시 예습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습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가. 대체로 법률공부를 독학으로 하는 셈치고 책을 가지고 혼자서 힘닿는 데까지는 공부하고 강의시간에는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나 책에는 안 써 있는 문제를 배울 것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교수가 학생에게 자꾸 질문을 하는 까닭에 예습을 강요하다시피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학생이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강의에 있어서는 학생이 꼭꼭 예습을 하여 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진실로 법률지식을 내 것으로 삼으려면 단단한 각오를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법률과목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과목은 민법과 형법이다. 따라서 법률공부의 첫해(법과대학에서 말한다면 제1학년에서는 교양과목 특히 어학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니 제2학년이 법률공부의 첫해가 될 것이다)에는 다른 과목은 손댈 필요 없이 민법과 형법에만 전력을 다하는 것이 상책이다. 민법과 형법만을 가급적 일찍이 통독하여 대강의 개념은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법은 민법총칙부터 공부하기로 되어 있지만 민법총칙은 민법 전체에 공통한 원칙인 까닭에 물권, 채권, 친족, 상속을 알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케이스 메서드”로 한다면 물권법이나 채권을 모르고 총칙만 몇 십 번 읽어 보았자 문구의 뜻은 알 수 있는 것같이 느끼지만 결국 그 진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총칙은 최후로 돌리고 물권법 채권법의 공부부터 시작할 수도 없다. 미국에서라면 무론 그렇게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총칙부터 시작하여 총칙 다음에 물권법을 배우기로 예가 그렇게 되어 있고 민법전의 배열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어느 책이나 물권법 책이면 총칙 공부를 마치고 읽을 것으로 예상하고 써 놓았기 때문이다. 법률공부란 결국 수학공부에 있어서와 같이 제1장이면 제1장만 자족적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다음에 제2장으로 넘어간다는 식으로는 안 되는 것이고, 모든 부분이 서로 엉켜 있어서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저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총칙에서 채권법까지를(친족법, 상속법은 물권법, 채권법과는 상당히 성질이 다른 법분야이기 때문에 우선 채권법까지 즉 재산법만을 제1단계로 잡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늘 훑어 공부하고 있노라면 항상 “이 부분을 읽고 보니 전번에 읽을 때에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이 문제가 저절로 이해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에 더 말하겠지만 법률책이란 소설을 읽다시피 죽죽 읽어서는 몇 십 번 읽어도 소용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정독을 하자니 하루에 5페이지 나갈까 말까 하니 총칙에서 시작하여 채권법을 뗄 때까지는 수개월이 걸리는 형편이며 그리고 나서 총칙의 첫머리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전번에 읽었던 것은 다 잊어버려서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이냐, 그 방법은 이렇다. 어떤 일정부분(총칙이면 총칙, 물권이면 물권)을 정독하는 공부와 민법전체(채권까지)를 단시일 내에 통독하는 공부를 항상 병행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민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총칙의 첫머리로부터 법인을 마칠 무렵까지는 한편으로는 채권법의 끝까지 한번 훑어 읽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면 物의 章으로부터는 강의를 들을 때에도 머릿속에 물권법 채권법 대강의 지식은 가지고 듣도록 될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강의를 들어도 이해하는 정도가 전과는 딴판으로 달라질 것이고 차차로 법률공부에 대한 취미의 싹이 틀 것이다.
형법을 공부하는 데도 대체로 같은 요령으로 총론을 공부할 때에도 각론도 대강 공부해 두도록 하여야 하며 특히 각론을 공부할 때에는 총론에서 배운 문제가 그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는지를 일일이 따지며 나가야 된다.
첫해에 민법과 형법의 기초만 든든히 닦아 놓으면 제2년에는 다른 과목들은 일사천리로 나간다. 민법과 형법의 기초만 든든히 닦아 놓은 뒤에는 반드시 과목마다 꼭꼭 예습하지 않더라도 좋을 만큼 된다. 민법과 형법에서 법률적 사고의 길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2년 이후는 고등고시에 임할 때까지 민법과 형법은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제2년 이후에도 민법과 형법은 늘 계속해서 공부해야 된다. 민법과 형법이 기초과목으로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민법 형법을 힘을 들여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민법이나 형법 역시 다른 과목과 분리해서 완전히 자족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과목을 공부함으로써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학생은 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여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관련하여서 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법률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과목별로 본 법률공부의 순서”이기도 하다.
법률공부를 독학으로 하는 셈치고 미리 공부해야 된다고 말하였는데, 그러면 그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말하자면 법률공부의 방법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법률공부에는 반드시 “조문․책․판례”의 셋이 정립(鼎立)하여야 한다. 이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가령 조문을 소홀히 하고 책과 판례만을 위주하여 공부한다든가, 조문과 책만 가지고 공부하고 판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든가 해서는 효과적인 법률공부가 될 수 없다. 심지어는 조문도 잘 찾아보지 않고 더구나 판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고 오로지 책만 가지고 외우려고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은 가장 그릇된 법률공부의 방법이다.
법률공부의 목표가 현행법에 입각하여 법률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는 이상 현행법의 조문을 떠나서는 법률공부란 있을 수 없다. 조문도 찾아보지 않고 책의 내용만을 머리에 넣더라도 그것은 허공에 뜬 지식 밖에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률책을 읽다가 괄호 속에 제 몇 조라고 조문이 나오면 반드시 그 조문을 찾아보되 조문을 읽을 때에는 면밀하게 따져가며 읽도록 습관을 붙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습관화해야 할 것은 법률문제를 논할 때에는 반드시 조문상의 근거를 제시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법률의 조문을 암기하여야 되느냐. 조문의 문구는 암기하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외우기만 하여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법의 몇 조에는 어떠한 문제가 규정되어 있는가, 절도죄는 형법 제 몇 조에 규정되어 있는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 고시위원의 채점평을 읽어보면 더러 조문 표시는 불필요하다느니 거기까지 요구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분이 있는데, 이러한 말씀은 법학도로 하여금 조문을 경시하는 그릇된 태도로 오도될 가능성이 많다. 역시 그것을 일일이 밝히도록 습관을 붙여야 한다.
그러면 무슨 조문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머리에 넣느냐. 민법이면 민법의 목차를 보고 민법전 전체의 체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를 파악한다. 그것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목차를 덮어놓고 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그 사항이 그 자리에 와 있는가를 생각하여 전체계를 유기적 관련하에 파악해야 한다. 다음에 각절 각관에 조문이 몇 개나 있으며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순서로 규정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도록 한다. 그것은 어떻게 하느냐. 법률책은 그 내용의 대부분이 조문의 해석인즉, 책을 읽을 때에 민법 몇 조는 무엇을 규정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그 조문에 제목을 붙인다. 제1조 권리능력의 시기, 제2조 외국인의 권리능력, 제3조 성년연령, 제4조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라는 식으로. 그것이 되면 수시로 짤막한 토막시간을 이용하여 제1조는 무엇, 제2조는 무엇, 제3조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육법전서는 가지고 다니도록 해야 한다. 잠깐 5분 동안 외출할 때에나 목욕을 갈 때에나 심지어는 변소에 갈 때까지라도 육법전서만은 “포켓” 속에 반드시 들어 있도록 습관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전차나 버스 안에서라든지 다방이나 응접실에서 누구를 기다릴 때든지 이발소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든지 혹은 뒷간에 앉아서든지 민법전을 한번 머릿속에서 들려본다. 때로는 반대로 무슨 문제는 몇 조든가를 생각해 본다. 하다가 막히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포켓”에 들어 있는 육법전서를 꺼내 본다. 이렇게 하면 민법이 비록 천여 조라 하지만 몇 조에 무슨 문제가 규정되어 있나 쯤은 용이하게 머리에 들어갈 수 있다. 더구나 재산법 7백여 조쯤이야 더욱 간단하다.
각 조문의 제목만 생각나면 그 조문의 내용은 법률책을 착실히 공부하는 동안에는 자연히 들어가게 된다. 문구를 그대로 외울 필요는 하나도 없다.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 내용이 머리에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은 법률책을 공부함으로써 이루어질 문제이니 법률책을 공부하는 방법은 조금 뒤에 설명하겠다.
육법전서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법률을 충분히 이해하고 법률의 정신을 충분히 체득하여서 정의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법률조문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말로써 법률조문의 문구에만 구애하여 법률의 정신을 몰각하고 정의의 요구에 상치되는 결론을 끄집어내는 풋내기 법률가가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경고한 말이다. 그러나 6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되려면 2, 3년 동안은 육법전서와 죽자살자 씨름하는 생활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을 육법전서에 근접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여서는 아니된다.
법률조문의 공부에 관하여는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는 법률책의 공부방법으로 넘어가자.
먼저 법률책은 어떻게 선택하면 좋으냐. 같은 민법총칙, 같은 형법총론이라도 좋은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은 차이가 크다. 신통치 않은 책으로 공부하다가는 실력이 붙기커녕 독자까지 멍텅구리가 되어버리기 쉽다. 그러니 책이름만 보고 책을 산다든가, 저자가 어떤 감투를 쓴 사람이냐만 보고 책을 산다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 두 가지만 들어보겠다.
첫째로 책의 내용이 완전히 저자 자신의 머리를 통하여서 나왔을 것. 이 말은 내용이 반드시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가 전내용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생각하여 전후 모순이 없도록 체계를 세워 거기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저서 중에는 저자 자신이 자기의 머릿속에서 미처 충분히 검토하지도 못한 채, 이 책에서 좋아 보이는 부분을 따고 저 책에서 좋아 보이는 구절을 주워모아 늘어놓은 따위의 것이 적지 않다. 이런 책은 흔히 이 문제에 관하여 갑설을 취하였으면 이론상 마땅히 저 문제에 관하여는 병설을 취해야 할 곳에서 갑설과 양립할 수 없는 을설을 취하는 일이 많다. 법률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면 이러한 모순을 발견하겠지만, 법률책을 외우려고 대드는 사람은 물론 그런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런 책을 외워보았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내용이 충분히 저자의 머리를 거쳐 나온 것이면 자연히 체계가 정돈되고 이로(理路)가 정연할 것이다.
둘째로 글이 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여물 것. 힘든 내용을 쉽게 표현한다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내용이 완전히 저자의 것이 되지 않고서는 못하는 것이다. 또 아무리 학술서적은 문학책과 다르다 할지라도 문장이 까다로워 읽기가 거북한 것보다 글이 자연스러워서 죽죽 읽을 수 있는 편이 좋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글이 여물어야 한다. 글이 여물다는 말은 한마디로 쓸데없는 말이 없고 한마디 한마디가 뺄 수 없는 꼭 있어야 할 말이며, 또 다른 말로는 바꾸어 놓을 수 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이 둘째 요건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한 절 또는 한 페이지를 충분히 읽고서 책을 덮고서 그 내용을 그대로 자기의 말로 표현하여 보라. 다음에 자기의 글과 책과를 대조하며 자기가 쓴 용어와 책의 용어가 같지 않은 것은 어느 쪽이 나은가를 비교하여 보라. 일일이 책이 낫다는 것을 수긍한다면 그 책의 글은 여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법률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책의 내용을 다 읽어보고 책을 선택한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 결국 지금 말한 표현은 초학자가 책을 고르는 데에는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간단하고 믿을 만한 방법은 선배에게 의논하는 것이다. 가깝게 의논할 선배가 없는 사람은 잡지에 게재되는 고시합격자의 수험기도 도움이 될 줄 안다.
자, 책은 골라서 사 놓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책 한 권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면 반드시 끝까지 매일 각오를 하여야 한다. 같은 과목에서 한 책을 읽다말고 치우고 다른 책으로 바꾸는 것은 대단히 나쁜 버릇이다. 그렇지만 책이 시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렇기 때문에 책을 고를 때에 신중히 하라고 한 것이다.
법률공부를 할 때에는 법률책 이외에 한편에 육법전서 한편에 법률학사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육법전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수시로 조문을 찾아보며 “법률책 중심”으로가 아니라 “조문 중심”으로 공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법률학사전을 좌우에 항상 놓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법률용어의 정확한 뜻을 그때 그때에 분명히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법률용어 중에는 일상은 쓰지 않는 독특한 것도 많고, 또 보통의 뜻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것도 적지 않다. 이러한 법률용어의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알 듯 말 듯한 용어를 짐작으로 이런 정도의 뜻이겠지 또는 차차 알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무리 공부해도 효과가 나지 않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법률공부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의 결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외워도 실력이 붙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 결론이 나오는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법률적 사고방법이 훈련되며, 그것이 체득됨으로써 외우지 않아도 그러한 결론이 당연히 나오게 되는 것이다. (논리적이지 못하면 상대의 논리의 모순이나 비약 등으로 난처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
따라서 일일이 조문이나 법률용어를 찾아서 밝히면서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경우를 머리에 상정하고 항상 “어째서” “왜”를 따지면서 읽어야 한다. 구체적 경우를 상정함에 있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각종의 경우를 상정하여 보아야 하고 책에 인용 판례는 주의하여 연구하여 보아야 한다(판례의 연구에 관하여는 뒤에 다시 언급하겠다). 책에 어떤 문제가 제시되든지 판례에서 어떤 문제가 나오면 그 다음을 읽기 전에 자력으로 그 해답을 연구하여 보고 연후에 책이나 판결의 결론과 비교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법률공부를 이와 같이 하자면 자연히 소위 속독을 할 수 없고 정독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때로는 한 페이지나 두 페이지 가지고 하루종일 씨름하는 일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하루에 몇 페이지씩이라고 계획을 세워도 소용없는 노릇이다. 그 따위 계획을 강행하자면 자연히 이해도 하지 못하는 채 넘어가야 될 터이니 그래가지고는 실력은 붙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읽는 동안에 자연히 스피드가 나게 되어 하루에 몇 페이지라는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에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데가 상당히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거기서 한 달 두 달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표를 하여 놓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처음에 표해 놓은 것의 대부분은 문제없이 이해되고 “아니 이런 것을 왜 몰라서 그랬을까” 싶은 감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에는 첫 번째에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넘어갔던 문제가 생각하면 할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횟수를 거듭하는 동안에 차차로 얕은 문제는 풀리고 깊은 문제에 눈을 뜨게 되면서 법률적 사고는 몸에 붙게 되는 것이다.
정독을 하느라면 자연히 읽는 속도가 더디어서 책의 중간을 읽을 때에는 첫머리에서 읽은 것은 이미 잊어버리고 있는 수가 많다. 이것은 마치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는 사람이 소경은 아닌지라 당장에 자기가 서 있는 발 밑이나 주위에 무엇이 있는 것은 보여도 도대체 어느 쪽이 동쪽이고 어느 쪽이 서쪽인지 알 수 없으며 아까 걸어오던 전차길이 왼편으로 붙어 있는지 오른편으로 붙어 있는지 도무지 분간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이와 같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내려다본다든가 지도를 본다든가 하여(지도라는 것도 높은 데 올라가서 내려다보고 만든 것이다) 길이 어떻게 붙어 있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있으면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법률책을 읽을 때에는(법률책에 한한 것이 아니겠지만) 1장에서 2장으로 1절에서 2절로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넘어갈 때에 길이 왼편으로 들어가나 오른편으로 들어가나 지금까지 온 길이 얼마쯤이나 꼬부러지나 즉 그 '앞뒤의 관계'를 주의하여 파악함으로써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민법총칙이면 민법총칙의 '지도'가 머리에 그려지게 되어야 한다. 적어도 민법의 시험을 친다고 할 때에는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주위의 돌과 길과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고 하는 것이 한 눈 속에 환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법률공부에는 조문 책 판례의 세 방면의 공부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한 중 지금까지 조문과 책의 공부방법을 설명하였다. 조문과 책으로 법률상의 여러 가지 원리, 원칙은 알게 되지만 그 원리, 원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문제에 당면하면 도무지 어떻게 되는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실제의 생활관계 속에서는 육법전서나 법률책에 있어서처럼 대리면 대리의 문제만이 또는 시효면 시효의 문제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법률문제가 복잡하게 엉켜서 나타나는 것이다. 조문이나 책은 실제의 복잡한 생활관계 속에서 일정한 유형을 추상하여서 배열한 것이며, 따라서 실제의 생활관계는 결코 조문이나 책에 쓰인 대로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법률공부의 목표는 실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양성함에 있는 것이고 그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원리 원칙만 알아도 소용없는 것이다. 아니 그 능력이 없다면 원리, 원칙을 공중으로 외운 것은 될지언정 진실로 원리, 원칙을 이해하였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능력은 많은 판례―즉 실제의 사건에 대하여 법원이 내린 판결―를 연구함으로써 양성된다. (실제 문제, 실제 문제로서의 요구사항, 실제 제품, 실제 쟁점, 실제 비즈니스모델)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판례를 연구하는 데 대단히 곤란한 형편에 있다. 그 이유는 판례집을 이용하기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공간된 판례집은 아직 없고 일정시대의 고등법원이나 일본 대심원의 판례집은 얻어 보기도 힘이 들거니와 일본어의 해독력이 약한 사람은 이용하기도 어려울 것이요, 또 앞으로 우리나라의 법전이 정비됨에 따라 일정시대의 것은 점점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판례집(예: 我妻榮, 민법교재 ILN / 小野淸一郞, 형사판례)이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이러한 것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현재의 상태로 근근히 판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책에 발췌 인용된 것과 잡지(예, 법정, 법조협회잡지)에 한 두 개 게재되는 것뿐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풍부한 판례의 연구는 기대할 수 없지만, 이러한 정도라도 항상 판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다수의 판례에 접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코드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로 법률이 있다.)
그러면 판례는 어떠한 요령으로 공부하는가.
① 먼저 사실을 잘 파악하고, (문제파악, 문제정의, 문제의식, 문제도출)
② 거기서 법률상 문제가 되는 점을 끄집어내고
③ 그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해결이 있을 수 있겠는지 가능한 모든 해결의 길을 상정하여(경우의수를 계산해보는 것, 변수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④ 그 중 판결은 어느 것을 취하였으며 그것을 취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히고(근거가 합당한가. 코드가 잘 동작할것인가)
⑤ 이 판결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나 달리 해결하는 편이 적절하였겠는가를 검토한다. (내가 예상한 결과가 나오는가. 테스트코드작성)
판결문은 상당히 긴 것이 많으니 요점을 잘 추려서 이상의 다섯 가지 점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된다. 미국에서는 판례를 가지고 법률을 가르치며(케이스 메서드) 학생들은 꼭꼭 판례를 미리 연구하여 가지고 교실에 나간다는 이야기는 앞서 말한 바이거니와, 학생들이 판례를 예습하는 요령이 역시 여기에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판례비평을 읽는 것은 물론 판례를 공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차차 법률잡지에 신판례에 대한 학자들의 비평이 실리는 일이 많게 될 줄로 믿는다. 일본에서는 각 대학에서 발간하는 법학잡지의 일부분을 판례비평이 차지하고 있다.
<법정 10권 4호(1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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